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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씨네



이름 없는 남자 Man with No Name
China, France | 2009 | 92min | color | 16:9 Letterbox | Stereo | DV
Asian Premiere


 먼저 이름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일까를 묻고 싶다. 타인과의 차별을 위해서인가, 아니면 자신이라는 존재에 대한 인식을 위해서인가? 영화의 출발점은 이름, 바꾸어 말하면 존재에 대한 담담한 질문이다. 

 이름도 나이도 알 수 없는 한 남자. 영화는 그 남자의 극히 일부라 할 수 있는 시간(영화의 시간은서 며칠인지, 몇 달인지 알 수 없다. 아니 몇 년이라고 할 수도 있다)을 공유한다. 공유된 삶의 궤적을 따라가보는 행위는 1인칭에 대한 해답이 될 수도 있으며, 2인칭에 대한 질문이 될 수도 있다. '나'라는 존재가 살아가는 이유에 대한 해답, '당신'이라는 존재가 가지는 질문. 여기서 당신은 단수일 수도, 복수일 수도 있다. 그리고 '아무도'일 수도 있다.



 영화 속 남자를 외부적 시각으로 해체해 보려 한다면 그를 통해 찾아야 한다. 그의 삶에서 나오는 의지의 근원은 외부적 요인 때문인지, 내부적 요인 때문인지에 대한 설명은 그 만이 대답할 수 있는 영역. 그러나 영화는 그것을 묻지 않는다. 모호한 입장이라기 보단, 의도적 배제에 가깝다. 그리고 보는 것에 집중한다.

 '본다'는 행위를 통해 그에게서 사회적 퇴행, 일탈의 기행, 산업화의 낙오 등 다양한 견해의 도출이 가능하다. 반대로 내면 세계의 진화라고 읽어 볼 수도 있다. 각자의 해석 나름이며, 각자의 선택에 달렸다. 선택을 위해 왕빙 감독은 관습적 전개의 탈피를 시도했을 뿐이다.  공식화되고, 짜인 틀을 이탈하여 만들어 낸 건조한 관찰의 보고서. 그저 일하고, 먹고, 자는, 생활의 모습. 

 그러나 우리가 일반적으로 받아들이는 주거문화와 너무나 떨어진(지극히 우리의 시각에서 평가한) 생존법. 감독은 여기서 나온 생생함을 관객이 느끼길 원했다. 이 생생함은 낯설다. 하지만 이것이 재미의 유무를 따질 수는 있지만, 영화적 가치의 의미를 따질 근거는 안 된다. 

 아무 것도 묻지도, 대답하지도 않으면서, 오로지 타인의 삶을 바라보기만 한 흥미로운(물론 재미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시간, <이름 없는 남자>. 과연 그 남자의 생각은 무엇일까? 무척 궁금하다. 하지만 그 대답을 듣는다는 것 보다 중요한 것은 나 자신에게 묻는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는 일이다. 나는 지금 무엇을 구하고 있는 것인가?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여기까지 확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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