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앙의 영화 <내 남자의 순이>
나는 영화를 볼 적에 조금만 지루하거나, 재미없으면 하품을 한다. 그리고 그게 길어지면 깜빡 졸기도 자주 하는 편이다. 아마도 너무 자주, 반복적으로 영화 감상을 해서 그런 것 일까. 그런데 <내 남자의 순이>는 정말 잠이 오질 않는, 심지어 하품도 나오지 않던 영화였다. 너무나 재미있어서. 아니, 절대 아니다. 너무나 황당했기 때문이다. 어디까지 막가는 것일 까란 궁금증에 하품이 나올 틈도 없었고, 내 인내심의 한계를 어디까지 시험하는 가란 반발심에 영화에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내 남자의 순이>는 초반부터 강렬하게 시작한다. 영화가 시작하는 순간부터, 지금 뭐 하는 거지 싶던 상황들. 이유를 알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자동차는 무차별 적으로 질주하고, 두 여자는 치고 받고 싸운다. 대사는 잘 들리지도 않는데, 뭐라 이야기는 계속 한다. 아,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이지. 그런데 제목이 등장한다. <내 남자의 순이>. 재앙은 이렇게 시작됐다.
'순이'를 차지하기 위한 쟁탈전
<내 남자의 순이>는 세라(박해미)와 라미(신이)의 로드무비 성격의 코믹물이다. 사채 빚에 시달리는 세라와 라미. 그 둘에게 어느 날 세라의 아들이자, 라미의 남편인 광수(이태성)가 '순이'의 존재를 알려준다. 순이의 정체는 시가 50억의 다이아몬드. 그 다이아몬드를 차지하기 위해 세라와 라미, 그리고 춘배파와 경찰 간의 쫓고 쫓기는 순이 쟁탈전이 시작된다. 과연 순이는 누구 손에 들어갈 것인가.
<내 남자의 순이>에서 '순이'라는 존재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초반부엔 '순이'의 정체가 무엇인가 숨기는 분위기를 잠시 조성하지만, 얼마 후 바로 밝히고 쟁탈전에 들어간다. 영화가 중요하게 다루는 것은 순이를 차지하기 위한 과정에서의 황당한 코믹적 상황. 그러나 <내 남자의 순이>는 코믹적 상황에서 무엇을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지에 대해 망각하고 있다. <내 남자의 순이>는 배우의 개인기에 의존하는 것이 아닌 시나리오가 중요했던 영화다. 그런데 영화는 그와 반대로 배우들의 개인기에 의존을 하면서 전개를 한다. 머리를 쓰면서 상황을 만들어서 배우들을 상황에 넣어야 하는데, 배우들이 적당히 알아서 상황 속에 비집고 들어가는 반대의 상황. 어느 정도의 기본적인 시나리오적인 가이드가 존재해야 하는데, 영화는 그저 막무가내로 질주한다.
시나리오의 불성실함이 불러오는 참사
시나리오의 불성실함은 두 가지 문제점을 불러 왔다. 하나는 러닝타임을 스스로 버거워 한다는 점. 영화는 91분이라는 요즘 영화치곤 아주 짧은 러닝타임이지만 숨이 차 헉헉거리는 느낌을 준다. 느슨한 시나리오가 만든 해프닝 속에서 보여지는 인물들의 행동은 의미도 없으며 지루할 뿐이다. 배우들의 개인적인 역량에 기댄 전개도 한계를 모른 채 소진하다가 마침내 바닥을 드러내고 만다. 그리고 남는 것은 반복적인 상황들이 불러 온 피로함.
코미디영화에서 무슨 의미를 찾느냐고 반문한다면 영화의 두 번째 문제점을 이야기 하고 싶다. 어떻게 보면 가장 큰 문제점인 웃기길 않는다는 점. 코미디영화인데 웃기질 않는다. 그저 주는 것은 허탈한 쓴 웃음이다.
대사는 상황과 안 맞게 따로 놀고, 편집은 불성실한 (심지어 중간엔 심각하게 컷이 안 맞는 장면이 보일 정도로 영화의 편집은 심각한 수준이다) 난장판의 상황. 그 난장판의 흐름에서 영화는 머리 쓰는 걸 단호히 거부한다. 순이를 훔치는 과정이든, 도망가는 과정이든, 망우리에서 시체를 훔치는 과정이든, 어떤 과정에서도 머리를 쓰질 않는다. 자신들이 만든 웃음 만을 강요하며, 애드립을 남발할 뿐이다.
스크린에 남는 것은 배우들의 초라한 모습 뿐
많은 이들이 <내 남자의 순이>를 보기 전에 기대를 접으라고 했었는데, 난 이 정도라곤 예상 못 했다. 어쩌면 난 김호준 감독의 히트작 <어린 신부>의 재기 발랄함을 조금이라도 기대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감독은 그 기대를 무참히 깨버리는 하이킥을 내게 날렸다. <어린 신부>에서 <제니, 주노>로 이루었던 퇴보의 흐름, 이번 <내 남자의 순이>는 그보다 더욱 더 퇴보하고 말았다. 한국에서 라즈베리 상이 존재한다면 <내 남자의 순이>는 필히 작품상 후보에 들어가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내 남자의 순이>가 내게 남겨준 하나의 의미는 기획과 대본이 부실하면 배우들이 어떻게 망가지는 지를 보여준 점이다. 부실한 대본과 연출이 만든 배우들의 얼마나 초라한 모습을 스크린에서 확인하고 싶다면 이 영화를 보라고 하고 싶다. 게다가 영화는 엄청난 인내심 테스트를 요구하니 극한의 분노를 억제하는 상황을 찾고 싶은 분들도 권하고 싶다.
김호준 감독의 언론인터뷰를 보니 따뜻한 마음으로 만든 가족영화라고 했던데, 난 정말 궁금하다. 이 영화에서 어디가 따뜻하고, 어디가 가족영화라는 것인지. 아무리 생각해도 찾을 수가 없다. 누가 좀 알려주길 바란다. 어디서 찾아야 하는지.
*이 영화를 보고 나니 2009년 <정승필 실종사건>이 생각났다. 영화의 재미때문이 아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보여준 CG 장면이 <정승필 실종사건>의 너훈아 장면에 버금가기 때문이다. 실로 놀라운 발상이다. 아무리 저예산 영화지만, 너무했다.
★
*2010년5월27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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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2012/05/08 20:22